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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제주 4·3, 나치 국가폭력”에 발끈한 윤상현…조사보고서 보니

명예회복 법제화 부정/논쟁 진상규명
요약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을 국가폭력 범죄로 규정하고 나치 전범 처벌 수준의 영구적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밝혔으나, 윤상현 의원은 이를 '획일적 규정'이라며 반발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위원회의 2003년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희생자는 2만5000~3만 명으로 추정되며, 토벌대에 의한 피해가 78.1%를 차지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 희생자 유족과 만나 국가 폭력 범죄로 규정하고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획일적 규정”이라며 발끈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지난 29일 제주 4·3 희생자 유족과의 오찬에서 “국가 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 시효, 소멸 시효를 완전히 배제해서 살아 있는 한 형사 책임은 끝까지 지고 상속 재산이 있는 한 그 자손들까지 그 범위 해서 책임을 지도록 형사 처벌 시효 그리고 민사 대상 소멸 시효도 폐지하도록 하겠다”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윤석열 정권 때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으나 조속히 재입법을 통해 “대한민국에서는 국가 폭력으로 국민들이 희생되는 일이 생기면 나치 전범 처벌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반드시 만들어 놓겠다”라고 밝혔다.

이에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치 전범에 준하는 국가범죄 폭력’이라고 정의한 규정을 두고 “행정안전부 장관도 동의하느냐”면서 “전체를 보면 하나의 언어로 획일적으로 국가폭력으로 정의할 수가 없다”라고 반발했다.

윤 의원은 “초창기에 박진경 연대장(대령)이 국가폭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다. 김대중 대통령도 CNN 인터뷰에서 4·3 사건은 공산주의자 폭동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명확히 규정했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 봉기, 폭동 또 그것에 대한 진압 과정에서 공산주의자로 몰려서 무고한 희생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48년 10월로 가면 성격이 달라진다.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분만 1764명으로 나온다”라며 “공산주의자들의 폭력에 의해서 희생된 거다, 그래서 획일적 규정은 조심해야 될 것 같다”라고 반문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취지는 알겠습니다만 그분들이 계시다고 해서 한 3만 명에 달하는, 그 당시 인구로 보면 제주도민의 10%가, 어떤 절차와 이런 과정을 거쳤든지 간에 (이들이) 희생되셨다”라며 “대부분의 많은 분들은 또 군경에 의해서 희생을 당하셨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박진경 대령이 과잉진압을 했는지 여부를 놓고도 윤 의원은 과잉진압 명령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윤 장관은 “조사를 해보겠습니다만 경찰의 주민과의 대화 협상 이런 것을 가로막고 강경 진압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었던 일어났던 일이라는 점은 역사적인 사실로 인정되고 있다”라고 반론했다.

김용민 법사위원장 대행은 “그 부분에 대한 역사적 진실 규명은 또 별도로 필요한 것 같다”라며 “토론의 대상은 아닌 것 같고 진실규명이 필요한 것 같다”라고 언급했다.

한편,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가 지난 2003년 12월 발간한 진상조사보고서를 보면, 위원회는 사건의 발발원인을 두고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생긴 제주사회의 긴장 상황 △그 이후 외지 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 서청(서북청년단)에 의한 검거 선풍, 테러, 고문치사 사건 등 △이에 따라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분석했다.

남로당의 봉기와 관련해 4·3 위원회는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4·3 위원회는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경을 비롯하여 선거관리 요원과 경찰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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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수는 4·3 위원회에 신고된 희생자수만 해도 1만4028명으로, 이는 전체 희생자 수로 판단할 수는 없다고 했다. 4·3 위원회는 잠정적으로 4·3 사건 인명피해를 2만5000~3만 명으로 추정했다. 희생자의 가해별 통계는 토벌대 78.1%(1만955명), 무장대 12.6%(1764명), 공란 9%(1266명) 등으로 나타났다.

초토화 작전으로 불린 강경진압작전을 두고 4·3 위원회는 “1948년 11월부터 9연대에 의해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강경 진압작전은 가장 비극적인 사태를 초래하였다”라고 평가했다. 1948년 11월17일 선포돼 그해 12월31일 해제된 ‘4·3 계엄령’에 대해, 4·3 위원회는 “제주도에서의 계엄령 집행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탈했다. 계엄령 하에서 재판절차 없이 즉결처분이 빈번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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