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8주년 제주4.3 학술세미나 15일 개최
디지털 아카이브·AI 기반 기억 재현 논의
“4.3을 쓰는 일은 침묵을 깨고 왜곡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제주4.3 78주년 학술 세미나에서 허호준 리츠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은 국가폭력의 기억을 기록하는 언론과 아카이브의 역할을 강조했다.
제주언론학회와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는 15일 오후 제주4.3평화재단 1층 대강당에서 제78주년 제주4.3 학술 세미나 ‘기억은 어떻게 미래가 되는가: 제주4.3 디지털 아카이브와 기억의 재현’을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겨레 선임기자 출신의 허호준 리츠메이칸대학 객원연구원이 ‘나는 왜 4.3을 쓰는가: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를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표했다.
허 연구원은 1991년 4월 다랑쉬굴 취재를 시작으로 4.3 보도에 뛰어들었으며, 이후 연구자로서 미국 문서 영인본과 미 국무성 관련 문서들을 추적해왔다.
그는 “4.3을 쓰는 일은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를 단순히 정리하는 차원이 아니”라며 “언론이 국가가 만든 시각과 용어를 그대로 되풀이함으로써 ‘폭동 프레임’을 재생산하고 정당화했다. 그러한 침묵과 왜곡은 비판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이 4.3을 쓰는 일은 침묵을 깨는 일이었고 바로잡는 일이었다. 이는 불화와 불신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니라 보편적 정의와 인권을 불러들이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허 연구원은 1차 자료의 발굴과 교차 검증을 중시하는 취재 원칙도 소개했다. “신문기사, 미군정 문서, 개인 소장 자료, 해방 공간의 여러 기록들은 오랫동안 묻혀있던 4.3의 흔적을 보여주는 진실의 편린들이었다. 논문의 각주에 실린 작은 단서 하나가 새로운 취재와 연구의 출발점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4.3 경험자들의 구술 채록에 대해서는 “기자들은 공감에 약하지만, 구술을 듣는 작업은 그들과 공감하는 일이 우선”이라며 “그 속에는 지워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과 죽음의 기억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동안 펴낸 저서들도 소개했다. 올해 4.3 추념일에 발간한 ‘4.3 아카이브로 본 역사’는 다양한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사건을 재구성한 책이며, ‘4.3, 기억의 폭풍 속으로’는 다랑쉬굴 유해 발굴부터 산에서 생활한 두 인물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 작품이다. 2021년 펴낸 ‘4.3, 미국에 묻다’는 4.3 전개 과정에서 미국의 직간접적 개입을 조명한 연구서이며, 2014년 출간한 ‘그리스와 제주: 비극의 역사와 그 후’는 제주4.3과 그리스 내전을 비교 분석한 연구서다.
그는 4.3의 세계화와 관련해 “단순히 제주도에 비극적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외국에 알리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며 “제주의 비극을 20세기 세계가 겪은 국가폭력과 냉전, 침묵과 기억의 역사 속에 위치짓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건 발생 78년의 세월이 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은 희미해지고 증언은 사라질 것”이라며 “기록은 과거의 진실을 찾는 작업을 넘어 미래를 위한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이완수 동서대학교 명예교수가 ‘과거 사건은 무엇을,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기억 이론의 새로운 접근방법을 통해’를, 김대경 동아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AI·XR 기술로 구현하는 제주4.3의 디지털기억관’을 각각 주제 발표했다.
이후 고호성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강홍균 제주한라대학교 겸임교수, 이재승 카카오 지역협력 리더, 고은경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팀장, 송진순 동아대학교 교수, 윤희각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 양동규 작가 등이 참여하는 종합토론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