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인터뷰] 가렛 에반스 전 호주 외교부장관
“반민주적 시기 딛고 4.3 기억하는 노력 놀라워”
“가해자에게 정말 큰 수치를 안겨주고 국제적으로 그 도의적 책임을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행한 끔찍한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릴 수 있어요.”
평화와 인권, 민주 등 제주4.3이 추구하는 가치를 꾸준히 강조해 오며 제5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한 가렛 에반스(Gareth Evans, 81) 전 호주 외교부장관이 단호하게 말했다.
부끄러움을 모른 채 국가 폭력의 역사를 부정, 왜곡하는 일부 세력에게 가닿는 말이다.
가렛 에반스 전 장관은 또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주4.3을 왜곡, 이용하는 세력에 대해 “비인간적인 일들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라면서도 4.3을 밝혀온 이들을 추켜세웠다.
[제주의소리]는 제21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부대행사로 열린 제주4.3 영화 ‘내 이름은’ 특별 상영회를 찾은 가렛 에반스 전 장관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통역은 000씨가 맡았다.
그는 4.3왜곡 시도에 대한 질문에 이들을 비판하기보다 짓눌려 온 세월 속 제주4.3의 가치를 지켜온 제주도민들을 높이 평가했다. 이렇게까지 해결한 사례가 국제적으로 드물기 때문이다.
그는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다. 국제적으로 이 같은 국가폭력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건이 있긴 하지만, 이후 정치 세력 내 문제 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나 능력을 보인 곳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한국은 이런 참상을 여전히 기억하려는 제주4.3평화재단 같은 기관이 있다는 사실에 놀랍다”며 “정치계에서 비인간적인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과거 반민주주의 시기 많은 역사들이 묻혀져 왔는데 이런 노력을 지속적으로 해 나간다는 것은 놀랍다”고 강조했다.
가렛 에반스는 호주의 변호사‧정치가‧외교관이자 국제 활동가로 호주 외교부 장관(1988~1996)을 역임하며 국제 평화와 인권 증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특히 국가 폭력과 집단학살로부터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규범인 ‘보호책임(R2P, Responsibility to Protect)’ 개념의 정립과 확산에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시대적 상황을 배제하고 만약 제주4.3 당시 ‘보호책임’이 발동됐다면 어땠을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대량 학살의 첫 증거가 발견된 순간 유엔 안보리에서 문제를 인식, 국제적 결의를 통한 제재 등 활동으로 적어도 3만여명이 희생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답변은 “그렇기때문에 이 같은 국제규범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더불어 “군사적 개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그랬을 수 있다”며 “그리고 중요한 것은 가해자들에게 수치를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제적으로 가해자들이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그들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을 수면 위로 드러낼 수 있다”며 “국제적 행동을 통해 그들에게 도의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보호책임에 대해 “최근 들어 이 개념이 희미해져 가고 있다. 국제사회의 합의와 집단적 노력이 있어야 인도주의적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는데 점점 흩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라며 “인도주의, 긍정주의를 통해 대량 학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3 영화 ‘내 이름은’ 특별 상영회에 참여한 소감을 물으니 가렛 에반스 전 장관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냈다. 그는 “제주에서 실제로 벌어진 역사를 담은 영화, 너무나 힘든 역사를 담은 이 영화가 세계에 많이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에 의해 일어난 끔찍한 폭력, 3만여명이 살해된 끔찍한 사건이 묻혀서는 안 된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대한 아픔을 떠올릴 것”이라며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똑같은 일을 반복하게 된다는 말처럼 비극, 참극을 기억해야 한다”고 밝혔다.
계속해서 눈물을 닦아내던 그는 “너무나 긴 억압 속에서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제주4.3은 묻혀져 왔다”며 “다시는 반복돼선 안 되고 그래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기억이다. 4.3을 바탕으로 국제사회가 어떻게 이런 비극에 대응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4.3평화상 수상은 내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지금까지 결정해 온 것들을 돌아보게 했다. 상을 받은 뒤 이런 참상이 절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