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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주의소리

나도 가끔은 선한 천사가 된 것 같은 이유

[김대휘의 행간과 밑줄] ④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스티븐 핑커, 김명남, 사이언스북스, 2014.)

인류의 폭력성을 확대 해석할 생각은 없지만, 세계사는 물론 한국사 기록 속 집단학살에서 만나는 인류의 폭력성 앞에서는 좌절하게 된다. 제주4.3을 취재한 경험에서도 그랬다. 2008년 11월로 기억한다. 제주국제공항 남북활주로에서 마주한, 1949년 10월 2일 당시 이루어진 집단학살 현장은 충격이었다.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총살된 민간인 249명의 하얀 뼈들이 층층이 드러나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미국과 이란의 긴장, 이스라엘의 파괴적인 팔레스타인 공격,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계속되는 전쟁을 보면, 그리고 인종과 종교, 특정 이데올로기와 이를 이용한 권력자가 일으키는 잔혹한 폭력을 마주할 때 과연 인간과 인류에 희망이 있는지 회의가 든다. 전쟁과 집단학살뿐만 아니라 특정 개인의 잔혹한 행위를 보면, 인간이 과연 '동물'이라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한 것인가 자문하게 된다.

성악설과 성선설로 인간과 사회를 나누어 보기도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좀 다른 시각이다. 우리 본성에는 '선한 천사'와 '내면의 악마'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 역사에서 우리 본성의 폭력성은 늘었을까, 줄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양면을 가진 본성에서 선한 천사를 불러올 수 있을까?

하버드 대학교의 인지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교수는 1000페이지가 넘는 대작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통해, 인류가 수천 년의 세월 동안 타인과 공존하며 마음속 선한 천사를 불러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핑커 교수가 제시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보자.

우선 전쟁을 보자. 유럽 대륙(동유럽, 서유럽, 서남아시아 포함)의 역사만 볼 때, 서기 900년부터 1400년 사이에 1148건의 전쟁이 발생했다. 그리고 1400년부터 현재까지는 1166건이다. 1100년 동안 매년 약 2건의 새로운 충돌이 발생했다고 소개한다. 하지만 1945년 이후에는 그 수가 비교적 급감했다(이 책은 2011년 첫 출판되었다). 저자는 이를 ‘긴 평화’라고 부른다. 그리고 긴 평화를 전후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제무역이 1885년에서 2000년 사이에 급증하는 데이터를 보여준다. 1946년 이후 식민전쟁과 국가 간 전쟁, 내전도 계속됐지만 여전히 그 수치는 급감했다. 인구 10만 명당 연간 사망자 수 역시 나치와 소련, 일본의 집단학살 이후 2005년까지 크게 감소했다.

이어서 소수 인종, 여성, 어린이, 동성애자, 동물을 보호 대상으로 여기는 권리 의식이 신장한 현상을 소개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1996~2008년 사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증오 범죄 살인 건수가 줄었고, 1970~2010년까지 여성을 상대로 한 살인율과 강간율이 감소했다. 아동 학대 건수가 줄었으며, 동성애자 대상 증오 범죄로 인한 살인보다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피해자가 될 확률이 100배나 많다는 FBI 증오 범죄 데이터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인간 본성의 선한 천사를 소개하는 9장이다. 과학적인 근거로 인간이 점점 똑똑해지면서 폭력성이 줄었다는 설명이다. 학계에는 이미 알려진 ‘플린 효과’가 있다. 한마디로 우리가 점점 똑똑해지고 있다는 것인데, 세계 30개 나라에서 IQ 검사 결과 IQ 점수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일반 지능이 높아진 것도 있지만, 추상적 개념(비례, 퍼센트, 중간값, 교환 관계, 비용 편익 분석 등)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는 표현의 자유, 관용, 인권, 비폭력 같은 정치 담론이 모든 사람의 정신적 도구가 되었음을 설명한다.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무자비한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사하던 본성에서 벗어나, 폭력의 무자비함과 그 결과를 추상적 개념을 동원해 비교 분석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지능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핑커 교수는 ‘정의를 강조하는 국가’, ‘온화한 상업(자본주의 평화)’, ‘여성화’, ‘감정 이입의 범위 확장’, ‘이성의 발달’이 내면의 악마보다 선한 천사를 점점 더 많이 불러왔다고 결론을 내린다. 1000페이지가 넘는 광범위한 책 내용을 짧게 소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기회가 되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제주 4.3이라는 아픈 기억을 넘어 평화를 기원하는 다양한 활동들이 많다. 내가 가장 기억하는 아름다운 순간은 경우회와 4.3유족회가 화해를 하는 기자회견과 다양한 교류 활동이었다. ‘화해’라는 추상 개념을 실천한 천사들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폭력의 시대를 같은 공간에서 겪은 그들이 함께 화해와 상행을 추구하는 모습은, 이를 지켜보는 후대들의 본성에서 선한 천사를 불러오는 행위가 아닌가.

하지만 인류가 무조건 선한 천사만을 불러와 무한 번영을 할 것이라는 낙관론만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내면의 악마에 휘둘려 핵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고, AI 만능 시대에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더 증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최근의 뉴스만 주목하면 전쟁이 언제 또 일어날지 모르겠고, 끔찍한 살인 사건과 증오 범죄가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 그래서 핑커 교수의 주장이 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음모론에 휩싸인 사람들은 자기 주장을 더욱 견고하게 하는 비과학 정보를 수집하고 확대 재생산하면서 폭력에 이르기도 한다.

세계가 점점 살 만한 세상으로 발전하고 있는지를 사실관계에 기반해 좀 더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성의 선한 천사를 불러오기 위해서는 현실 속 팩트를 살펴야 한다. SNS에 떠도는 왜곡된 정보가 아니라 객관적 통계가 제시하는 팩트 말이다.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는 SNS의 즐거움 뒤에는 막연한 두려움과 편견을 조장하는 정보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알고리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어렵다. AI 알고리즘은 내가 과거에 검색하고 소비했던 정보를 바탕으로 유사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팩트에 충실한 현재를 바라봐야 미래를 보다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유명한 책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를 통해 한 번 더 상기해 보자.

김대휘

김대휘는 기자생활을 30년 정도했다. 제주도기자협회장을 역임하고 제주CBS 보도국장에 이어 제주CBS 대표로 퇴직했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함께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제주시 한경면에서 책방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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