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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제주일보

고시홍의 소설 ‘동백꽃 무덤’과 양손잡이

작가의 넋두리라며 고시홍은 제주4·3과 여순사건의 상징인 동백꽃이 “민중의 목숨을 휩쓸고 간 비극의 쓰나미, 유혈극의 피 울음”이라고 썼다. 4·3사건이 벌어지고 제주도민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은 국방경비대 14연대 병사위원회는 “조선 인민의 아들인 우리는 우리 형제를 죽이는 것을 거부하고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우리는 조선 인민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싸우는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려고 봉기했다.”라며 1948년 10월 19일 일어났고, 정부는 대규모 진압군을 파견해 일주일 만(10월 27일)에 진압한다.

작가 고시홍은 중편 『동백꽃 무덤』(도화, 2026)에서 모슬포 섯알오름에서 벌어졌던 예비검속자 집단 학살 사건과 여순사건의 발원지인 여수를 중심으로 한 씨줄, 날줄의 역사 기행 같은 소설을 엮어냈다. 거기에 「할머니의 땅」을 비롯한 단편 여섯 작품을 더해 “모두 왜 소멸 위기의 집단기억을 소환하는가, 민중의 삶에서 국가는 왜 존재하며 역사는 무엇인가로 귀결되는 심문”임을 문제 제기하고 있다.

평행이론처럼 정말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은 닮은 데가 많음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여순사건을 조사하는 ‘장무진’ 기자를 초점 화자로 삼아 예비검속에 의해 섯알오름에서 죽어간 일백여 명의 원혼들과 “한 하르방 자식들이 한날한시에 한 곳에서 죽어 뼈가 하나로 엉키었으니 앞으로 피아를 구별하지 말고 집안 문중 선묘처럼 돌보기로 헙시다”라며 조성한 백조일손지묘 이야기와 ‘손가락 총질’을 당하여 숯가마 같은 구덩이에 파묻혀야 했던 125명의 시신이 묻힌 여수 만성리의 ‘형제묘’ 이야기는 너무나 닮았다.

여순사건에서 언급되는 ‘손가락 총질’이란 적색분자를 지적하라는 강요에 누군지도 모르는 얼굴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 폭도에 가담한 것이 되는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다. 소설은 “적색분자 선별 기준은 모호했다. 빨갱이 기운이 느껴지는 자, 머리를 짧게 깎은 자, 손에 기름때 흔적이 있는 자, 손이 투박한 자, 국방색 러닝셔츠나 팬티를 입은 자” 등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죄 없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음을 서사화한다.

그런 비극적 사건의 배후에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후에도 여전히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었던 주한미군사령관이 있었다. 미군사고문단이 작전을 조언하고 통제했는데, 여순에서는 10월 21일 고문단장 로버츠가 여순 진압 작전 전개를 지시했고, 반란군 토벌 사령관의 고문관이었던 제임스 하우스만이 토벌사령부 조직과 작전을 지원 감독했다고 한다. 하우스만은 훗날 회고록에서 “한국인들은 잔인한 개자식이고 일본인보다도 더 나쁘다”라고 했으며, 한국인 시신을 가솔린으로 태워 없애고 공산주의자들이 한 것처럼 위장하는 술책을 써 가며 모든 책임을 남조선에 전가하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민을 내세우는 헌법의 주권과 권력이 “‘반공’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통치권자의 전유물”로 전락해 버렸던 ‘죽음 정치’는 김동현 평론가의 주장처럼 ‘평행이동’을 하여 1979년 부마, 1980년 광주, 2024년 비상계엄으로 이어졌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여전히 오른손잡이냐, 왼손잡이냐 하는 언어의 분칠, 아귀다툼은 가시지 않은 세상이우다. 언제면 이념의 녹조현상, 적조현상이 걷히고 양손잡이가 지배하는 날이 올 것인고마씀”이라고 썼다. 동백꽃을 공동 상징으로 삼은 제주4·3사건과 여순사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진정한 양손잡이의 균형을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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