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연구소 제78주년 학술대회
4.3정명과 배제된 희생자 문제 조명
제주4.3의 역사적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 또 희생자 인정에서 제외된 이들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놓고 학계가 미뤄진 정의를 주제로 논의를 이어갔다. 제주4.3 80주년을 앞두고 ‘정명(正名)’과 희생자 배제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는 다양한 제언이 나왔다.
제주도가 후원하고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주4.3 제78주년 기념 학술대회 ‘4.3의 미뤄진 정의-4.3 정명·배제자’가 10일 오후 제주아스타호텔 아이리스홀에서 열렸다.
1부에서는 김창후 제주4.3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아 양조훈 전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의 ‘왜 지금 4.3의 정명인가’, 고성만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희생자 제외대상 20년사 재고: 논쟁을 위한 질문들’, 이재승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양민과 폭도의 틀을 넘어서’ 주제 발표가 진행됐다.
양조훈 전 이사장은 ‘제주4.3사건’이라는 현재의 명칭만으로는 역사적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기 어렵다며 정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양 전 이사장은 “4.3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제주4.3사건’이라는 명칭만 봐서는 왜 제주에서 봉기가 일어났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는지, 국가의 책임은 무엇인지 한눈에 알기 어렵다”며 “역사적 의미를 담아내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명은 과거사 해결의 마지막 단계”라며 "진상조사, 명예회복, 배·보상, 정의 실현에 이어 마침표를 찍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정부가 4.3을 ‘공산반란’ 또는 ‘공산폭동’으로 규정했던 역사와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중항쟁'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과정을 소개한 뒤, 1999년 제주4.3특별법 제정 당시 정의 규정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점을 언급했다.
또 독일 홀로코스트와 베트남 미라이 학살, 캄보디아 제노사이드 등 해외 사례와 5.18민주화운동, 부마민주항쟁, 동학농민혁명 등 국내 과거사 명칭 변화 과정을 설명하며 “다른 과거사들도 처음부터 역사적 성격이 반영된 이름을 갖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28년 제주4.3 80주년을 정명 논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 전 이사장은 “4.3은 부당한 탄압에 대한 저항과 분단 반대를 위한 항쟁이라는 성격, 국가 공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며 “적극적인 명칭 사용 운동과 제주도의회의 관련 조례 제정 시도, 궁극적으로는 국회의 특별법 명칭 및 정의 조항 개정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성만 제주대 교수는 제주4.3 희생자 인정 과정에서 제외대상이 형성된 역사와 그 의미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고 교수는 희생자 신고와 심의 절차가 과거사 해결의 핵심 과정이라며, 남로당 제주도당 핵심 간부와 무장대 수괴급 등을 희생자 인정 대상에서 제외한 기준이 특별법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왔지만, 충분한 사회적 논의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또 4.3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 설치된 무명위패를 언급하며 “희생자로 신고되지 못했거나 희생자로 편입되지 않은 사람, 희생자 자격이 박탈된 사람들도 존재한다”며 무명위패가 희생자를 둘러싼 갈등을 가시화하기보다 기존 질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할 가능성에 대해 언급했다.
고 교수는 올해가 4.3실무위원회가 희생자 제외대상 유족들에게 희생자 신고 철회를 요구했고, 그 결과 위패가 4.3평화공원에서 철거된 지 20년이 되는 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철회서에 응답했던 분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지만, 날인을 종용했던 사회는 이제라도 미뤄온 정의에 진지하게 접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재승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주4.3에서 봉기 세력의 법적 지위를 둘러싼 문제를 발표했다.
이 교수는 2001년 헌법재판소 결정과 이후 제주4.3위원회의 희생자 인정 기준을 언급하며, 당시 판단이 정치적 이념에 근거해 이뤄졌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 남로당 간부나 무장대라는 이유만으로 개별적인 사법 판단 없이 희생자 지위를 제한한 점, 현재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을 4.3 당시 상황에 소급 적용한 점, 집단적 폭력의 역사적 맥락보다 결과를 중심으로 판단한 점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이어 해외 사례를 소개하며 봉기 세력을 피해자로만 인정하는 방안, 초법적 처벌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안, 유격대원을 피해자로 인정하는 방안, 교전 중 전사자를 정당한 저항자로 인정하는 방안 등 네 가지 유형의 희생자 인정 방식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사례를 통해 제주4.3 희생자 인정 범위를 둘러싼 다양한 접근 가능성을 소개했다.
2부에서는 문성윤 변호사, 박찬식 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장, 김동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고, 3부에서는 라운드테이블 종합토론이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