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관련 국내외 언론 보도를 매일 자동으로 수집·아카이빙합니다
기사 제주일보

4.3 집단 희생...섯알오름 탄약고 학살사건 '위령제'

제76주기 섯알오름 예비검속 희생자 합동위령제가 19일 서귀포시 대정읍 백조일손묘역에서 봉행됐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김창범)가 주최하고 백조일손유족회(회장 고영우), 섯알오름사건 행불유족회(회장 송태희)가 주관한 위령제에는 위성곤 제주도지사, 김성범 국회의원, 임문철 4·3평화재단 이사장, 유족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위령제는 제례를 시작으로 국민의례, 헌화 및 분향, 경과보고, 주제사, 추도사, 시낭송, 공연으로 진행됐다.

위성곤 지사는 “예비검속이라는 국가폭력의 상처는 반세기가 훌쩍 넘어도 유가족들의 삶에 짙은 그늘로 남아 있다”며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서로를 보듬는 연대와 상생의 힘으로 침묵 속에 묻힐 뻔한 역사를 세상 밖으로 이끌어냈다”고 말했다.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은 “이제 4·3은 세계가 함께 기억해야 할 평화와 인권의 교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남아있는 4·3과제들을 정의롭게 해결해 나감은 물론, 섯알오름의 희생에 대해 국가가 책임을 온전히 이행할 때까지 정의로운 행보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당시 모슬포경찰서는 4·3당시 입산(피신)한 경력이 있거나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한림·한경·대정·안덕지역에서 344명의 도민을 예비검속했다.

이 중 132명은 대정읍 상모리 고구마 저장 창고에 수감됐다가 1950년 8월 20일(음력 7월 7일) 새벽 일제강점기 옛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 끌려가 총살당했다. 이 탄약고는 태평양전쟁(1941~1945) 당시 일본군이 섯알오름에 동굴진지를 구축하면서 오름 내부에 설치한 것이다.

희생자 중에는 농민과 학생은 물론 마을유지와 공무원, 교사, 우익단체장도 있었다.

군·경은 6년이 지난 1956년 3월에야 학살터에 유족들의 출입을 허용했다. 유해 발굴 당시 유골 34구와 치아, 옷, 신발창, 실탄 1700여발이 나왔다. 132구는 신원 확인이 어려워 학살현장 인근에 묘역을 조성해 안장했다.

위령 묘비에는 조상은 100명이 넘되 자손은 하나라는 의미로 백조일손지지(百祖一孫之地)라고 새겼다.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