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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침묵 깨고”...4.3항쟁 열사들 이름, 다시 역사 앞으로

제주4.3 당시 자주적인 나라와 통일된 조국을 요구하며 항쟁의 길에 나섰던 열사들을 기리는 추모제가 제주에서 열렸다.

4.3항쟁열사추모사업위원회는 22일 오전 11시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돌오름에서 '4.3항쟁 열사 추모제'를 봉행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위원회의 상임 대표단체인 4․3통일의길 마중물, 제주주권연대, 양용찬열사추모사업회 를 비롯해 4.3항쟁의 역사와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려는 노동·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 도민 등이 참석했다.

행사는 놀이패 한라산의 초감제를 시작으로 대회사와 추모사, 낭독극, 추모시 낭독, 노래공연, 제례와 음복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강동수 4·3통일의길 마중물 대표는 대회사에서 "오늘 우리는 이 땅의 당당한 주인으로서 자주적인 삶을 살고자 했던 그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며 "1948년 제주민들의 항쟁정신을 계승해 민중이 주인 되는 나라,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이 실현되는 그날을 향해 나아가자"고 말했다.

김희정 제주통일청년회 대표는 추모사를 통해 "80년의 침묵을 깨고, 그들의 이름을 역사의 광장으로 부른다"며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이들은 해방 이후의 혼란과 분단 과정에서 자주적인 나라와 통일된 조국을 요구하며 항쟁의 길에 나섰던 사람들"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 대표는 "그들이 가고자 했던 길은 분단과 탄압에 맞선 위대한 민중 항쟁이었다"며 "이제 남아있는 것은 '배제당한 이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일이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찾아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평화재단이 해야 할 역할인데, 대신 해줘서 미안하고 고맙다"며 "평화재단도 함께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추모사업위원회는 추모제 장소 주변의 4.3항쟁 역사현장 5곳을 소개했다.

들굽궤와 족은들굽궤는 노로오름 북쪽에 위치한 동굴 형태의 공간으로, 깨진 옹기와 신발 뒤축, 칼, 괭이 등 생활도구와 함께 미군 카빈·개런드 관련 탄피 등이 발견된 곳이다. 주변에서 토벌대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탄약과 유격대가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 함께 발견돼 유격대와 토벌대 사이 교전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다.

노로오름 정상부 북쪽의 분화구인 '장태코' 일대에서도 유격대의 생활 흔적과 교전 흔적이 확인됐다. 분화구 내부에서는 집터와 생활도구 등이 발견됐으며, 각종 탄피와 탄클립, 개런드 대검집 등의 유물도 확인된 것으로 소개됐다.

산물내 전투지는 안천이오름 동남쪽 약 900m 지점으로, 노로오름 등산로 입구에서 한대오름 방면으로 이어지는 임도 주변에 매복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탄피와 탄두, 박격포 불발탄 등이 발굴된 것으로 소개됐다.

한대오름 남서쪽 일명 '한대비케'로 불리는 곳에는 유격대 근거지로 추정되는 흔적이 남아 있다. 여러 형태의 집터와 함께 공기조각과 그릇, 솥 조각 등 생활도구, 교전 흔적 등이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추모제 장소인 돌오름 궤 역시 4.3 당시 유격대가 잠시 머물렀던 곳으로 소개됐다. 이곳에서는 일본군 89식 중척탄통 관련 유물과 91식 수류탄, 철조각, 숯조각 등이 발굴된 것으로 알려졌다.

추모제가 열린 공간 자체가 4.3 당시 사람들이 생활하고 피신하며 무장대와 토벌대 사이의 충돌이 벌어졌던 현장이라는 점에서 이날 행사는 단순한 추모를 넘어 역사 현장에서 과거를 되짚는 자리로 진행됐다.

문화공연은 배우 진정아·박은주·김경만이 참여한 낭독극을 비롯해 시인 김경훈의 추모시 '바라노니 너희 세상은' 낭독, 최상돈 가수와 김강곤 아코디언 연주자 등이 참여한 산오락회의 노래공연이 진행됐다.

참가자들은 현장에서 희생된 항쟁 열사들의 삶을 기억하는 한편, 이들이 꿈꿨던 사회와 제주 공동체의 미래를 되짚었다. 추모제를 마치며 4.3항쟁의 정신을 계승하고 자주와 평화, 통일의 길을 열어가겠다는 뜻을 함께했다.

추모사업위원회는 "열사들의 이름과 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것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묻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제주4.3항쟁의 역사와 그 정신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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