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아카이브-어둠에서 빛으로] ① 미래세대 위한 4.3 아키이브 기록관
‘제주4.3기록물’은 지난해 4월 11일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로부터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됐다. 4.3 기록물은 더 이상 제주만의 것이 아닌 전 세계적인 인류 공동 자산이라는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4.3 기록물의 가치는 이재명 정부가 국정운영 제주 공약으로 제시한 ‘4.3 아카이브 기록관’을 통해 더욱 선명해질 전망이다. [제주의소리]는 첫 발을 뗀 4.3 아카이브 기록관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국가기록유산으로 등록될 예정인 다랑쉬굴 학살터, 새단장한 중문4,3기념관까지 함께 조명하며, 4.3아카이브의 현 주소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이 기록물들은 한국의 탈식민 이행기 속에서 억눌렸던 기억을 보존하며, 오랜 시간 동안 공산주의와 연관돼 낙인을 견뎌야 했던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조명한다. 또한 과거 가해자였던 이들도 포용하려는 공동체적 노력을 강조하며, 제주를 공존의 공동체로 만들어가려는 비전을 담고 있다. 이 아카이브는 화해와 회복을 이루기 위한 지역 공동체의 풀뿌리 민주주의적 실천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유네스코는 지난해 4월 제주4.3기록물(Jeju 4.3 Archives)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위와 같이 평가했다. 과거의 아픈 기억뿐만 아니라 명예회복을 위한 지난한 과정, 나아가 화해와 회복을 추구하는 승화적 노력까지. 4.3기록물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가치가 담겨있는 셈이다.
정부도 4.3기록물에 주목했다.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제주지역 7대 공약 가운데 하나로 ‘4.3 아카이브 기록관 건립’을 포함시킨 것이다. 민선 9기 제주도정 또한 100대 정책 과제로 기록관 건립을 반영했다.
4.3기록유산을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보존하면서 활용 기반도 마련하고자, 국제 평화와 인권 아카이브의 거점으로 기록관을 조성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등재된 4.3기록물은 1만4673건이다. 형태로 구분하면 ▲문서 1만3976점 ▲서적 19권 ▲엽서 25점 ▲팸플릿 20권 ▲비문 1점 ▲영상물 538개 ▲오디오테이프 94개 등이다.
종류 별로 나누면 앞서 언급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필 수 있는 내용들이다.
4.3 사건 당시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들의 명단인 ‘수형인 명부’를 비롯해, 형무소에서 보낸 엽서, 수형인 증언 등 군법회의를 받은 수형인 기록들이 포함됐다.
여기에 소설가 오성찬(1940~2012)이 생전 제주 마을 곳곳을 찾아다니며 남긴 채록 증언 94점도 4.3기록물로 지정됐다. 제주4.3연구소가 남긴 채록 증언도 포함하면서, 제주도의회가 1994년부터 1995년까지 받은 4.3피해신고서 1만3968점도 더한다.
김동만 교수(제주한라대)가 기록한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증언 영상,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채록한 535건의 영상도 포함됐다.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시민운동의 기록들도 가치를 인정받았다. 엄혹한 시절에 4.3이란 역사를 알리는데 앞장선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과 제민일보 4.3특별취재반이 출판한 ‘4.3을 말한다’ 다섯 권과 4.3연구소가 정리한 증언집 ‘이제사 말햄수다’도 진상규명 과정에서 의미 있는 성과로 기록물에 이름을 올렸다.
2003년부터 제주시 애월읍 하귀리 주민들이 4.3 희생자와 호국열사를 함께 모신 ‘영모원’을 비롯해 합동위령제 관련 자료들도 포함됐다. 제주4.3특별법 제정에 앞장선 시도들과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이 적힌 ‘4.3 특별법’ 서명문서, 정부 차원의 첫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초안과 공식 보고서도 당당하게 4.3기록물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이렇게 제주4.3의 역사를 담아낸 기록들을 총집합한 4.3기록물을 보관하면서 세상에 보여줄 4.3기록관은 4.3 관련 제주지역 유적지 582개와 비교해도 독보적인 기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특히 아직 기록유산으로 등재하지 못했지만, 진상규명 운동과 명예회복 과정에서 생산·수집된 기록물이 많이 남아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기록들을 감안하면 4.3기록관의 향후 역할과 기능은 더욱 중요해질 수 밖에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전쟁범죄 기록물을 보관하는 ‘독일 아롤센 아카이브’, 일본제국군이 저지른 난징대학살 관련 기록물을 보유한 ‘중국 난징대학살기념관’, 광주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록과 전시-연구-교류 역할까지 맡고 있는 ‘5.18민주화운동 기록관’, 국내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처음으로 설립된 영구 기록물관리기관인 ‘청주기록원’ 등 국내외에 여러 기록관 사례가 확인된다.
먼저 만들어진 주요 기록관을 통해 참고할 수 있는 교훈은 ▲디지털 아카이브, 온라인 열람서비스 강조 ▲사회적 기억 계승 기능 수행 ▲전문적인 아카이브 체계 구축 ▲보존 중심에서 활용 중심으로 이동 ▲기록을 전시-교육-문화 콘텐츠로 확장 등이다.
이런 배경에서 4.3 아카이브 기록관은 4.3기록물을 통합적으로 보존·관리하는 동시에, 공개·열람 서비스도 가능한 ‘개방형 기록관’이라는 성격을 추구하고자, 현재 여러 입지와 기능을 검토하고 있다. 입지는 크게 다섯 곳을 후보로 점쳐둔 상태이며, 향후 기록관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 마무리되면 확정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기록물관리기관이라는 기본 성격에 충실하면서, ▲수집·보존 기능 ▲작업 기능 ▲업무 기능 ▲활용 기능 ▲부대 기능을 함께 수행하는 ‘기억과 기록의 전당’을 추구할 전망이다.
4.3 아카이브 기록관은 현재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를 밟고 있다. 올해 말 용역이 마무리되면 향후 정부 부처와 협의를 거쳐 추진될 전망이다.
4.3 기록관 건립 자문위원회는 최근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고, 추가 등재와 기록관 콘텐츠 개발 등 다양한 과제들이 남아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존 4.3 관련 시설이 갖추지 못한 체계적인 기록물 보존 체계를 기록관을 통해 갖추고, 과거의 기록이 미래세대와 연결되는 살아있는 공간으로 운영돼야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여겼다.
* ‘4.3 아카이브-어둠에서 빛으로’ 기획 취재는 제주도의 취재 지원과 협조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