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 보존.세계화" 한 목소리...넬슨 만델라 기록물, 세계화 사례는?
해외 곳곳서 '4.3특별전시'...국제연대...그러나 아직 갈 길 먼 세계화
제주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제주4·3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넘어 세계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가 됐다.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일깨운 과거사 해결의 모범 사례로서 제주4·3의 정신과 가치는 이제 인류 보편의 평화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그 의미를 확산하고 기억을 이어가기 위한 후속 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유다.
현재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제주4·3아카이브 기록관 건립과 함께, 제주4·3의 정신과 가치를 다음 세대와 세계에 확산하는 일, 이른바 4·3의 전국화·세계화는 중요한 당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헤드라인제주>는 제주4·3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기록유산의 세계적 가치 확산’과 ‘기억의 전승 및 기록의 세계화’를 주제로 2회에 걸쳐 그 방향과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제주4·3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제주4·3의 진실을 밝히고,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려는 제주도민의 염원과 진정성이 결실을 맺은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제주4·3의 정신과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세계기록유산 등재 그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성과이자 소중한 결실이고, 제주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다. 등재 이후 부여받은 책무 또한 막중하다. 세계기록유산의 격에 걸맞게 인류 보편의 자산으로 후대에 전승하기 위한 작업, 나아가 기록의 대중화·전국화를 넘어 세계화하는 과제가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
제주4·3아카이브 기록관 건립은 기억의 세대 전승과 기록의 세계화를 위한 시작점이자 거점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인 방안과 운영계획이 마련돼야 한다.
◇ 세계가 인정한 4·3의 가치, ‘기록의 세계화’ 방향과 과제는?
지난해 11월 13~14일 제주4·3평화재단에서 열린 제15회 제주4·3평화포럼은 이런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제주4·3기록물 세계기록유산 등재와 4·3의 세계화'를 주제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4·3기록물의 세계화 방안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양정심 제주4·3평화재단 조사연구실장은 “세계기록유산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는 '세계적 중요성'”이라며 “인류가 보존해야 할 세계사적으로 가치 있는 역사적 기록이 선정되는 것인데, 그래서 4·3기록물의 등재는 인류가 보존하고 미래에도 기억해야 할 소중한 자산임을 선언하는 것이고,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 실장은 “이제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4·3 해결이라는 자랑스러운 여정에서 기록을 보존하고 기억하여 미래세대에 알리는 새로운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며 “기록과 기억의 공간을 통해 미래세대에게 제주4·3의 정신을 남겨가는 중요한 과제를 다시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가 제주4·3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4·3기록이 인류가 보존해야 할 세계사적 가치를 공인받았음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물음을 던진 후, “세계기록유산이라는 기쁨을 넘어 다시금 긴장과 고민의 고삐를 놓을 수 없는 시간이 됐다”고 강조했다.
김귀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아태지역위원회 의장은 “세계기록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의 기억사업(Memory of the World)의 하나로 지정되는 세계적으로 중요한 기록유산을 지칭한다”며 “세계기록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해서는 유네스코 운영지침의 9가지 보존 원칙을 준수하고, 적절한 보존 환경 조성 및 접근성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주4·3기록물의 가치에서 희귀성과 역사적 중요성 측면을 높이 평가했다. 사건 당시 은폐·왜곡·폐기된 기록을 희생자 유족과 제주도민이 끊임없이 발굴해 정부 공식 조사로 이어지게 한 결실, 국가권력의 탄압 속에서도 지속된 진상규명 요구를 통해 국가의 사과를 이끌어낸 민주적 절차, 민주주의 진전에 기여한 역사적 성과를 꼽았다.
그러면서 "4.3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기록물의 가치가 한 국가의 문화적 경계를 넘어 인류 전체의 것이 됨을 의미한다"며 인류 공동의 자산이 된 4.3기록물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세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네스코 운영지침의 보존 원칙을 준수하고, 적절한 보존환경 조성과 접근성 강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보존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웹 기반 가치 제공 플랫폼 구축과 함께 원본 기록물뿐 아니라 관련 공간·전통문화의 보존, 지속적인 모니터링 방법 연구 및 지원전략 수립 등 과학적 연구 기반을 구축할 것을 제안했다. 이를 위해 제주4·3 전용 박물관 설립도 검토할 것을 주문했다.
◇ 넬슨 만델라 유산과 기록물, 세계화 사례는?
4.3평화포럼에서는 넬슨만델라재단 연구원인 안 영 마하라자(Ann-Young Maharaj)도 참석, '넬슨 만델라, 기억의 대중화' 사례를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그녀는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라는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으나, 이제는 연구자들이 '기억의 세계화'라고 명명한 현상을 촉발시킨 전 지구적 서사가 됐다"며 "미디어, 박물관, 공론장을 통한 역사의 대중화에 따른 기억의 세계화 과정을 보면, 넬슨 만델라가 어떻게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넘어 전 세계인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을 수 있게 됐는지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억의 대중화'와 '기억의 세계화'를 위해 만델라가 남긴 유산과 관련 기록물들은 전시회를 포함해 여러 방식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다고 했다. 전시를 찾은 관람객들은 기록물과 사료라는 구체적인 형태로 실존하는 만델라의 유산을 볼 수 있다.
넬슨만델라재단은 만델라에 관한 전시뿐만 아니라,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우리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인권 및 사회.경제적 문제를 테마로 하는 전시도 개최한다고 소개했다.
국내 전시는 '넬슨 만델라의 삶과 시대'라는 상설 전시가 열린다. 주로 만델라의 생애를 기록한 유품, 문서, 사진들로 구성돼 있다. 또 유리로 된 감방과 만델라가 퇴임 후 사용했던 사무실도 볼 수 있다.
국제 순회 전시도 열린다. 국내 기록물을 다른 나라에서도 전시할 수 있도록 기획된 국제 전시는 문화적 간극을 좁히고, 인종, 정의, 역사적 기억에 대한 국제적 대화를 촉진하는데 기여한다고 설명했다. 브라질에서 '만델라-화해의 세계적 상징'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디지털 전시도 진행된다. 구글 아트 앤 컬쳐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박물관이나 학술 서적 등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는 이용자와 상호작용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되며,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이해하기 쉽게 구성돼 있다.
소셜 미디어를 활용해, 기록물과 유품을 소개하는 짧은 영상들도 게시하고 있다. 이 밖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저명 인사들을 초대해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 토론을 하는 연례 강연 시리즈도 선보인다.
◇ 해외 곳곳에서 열리는 제주4.3 기록물 특별전시...세계화 '시동'
이런 가운데 세계기록유산 등재 후 기억과 기록의 대중화·세계화를 위한 활동도 점차 활발해지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기록물의 국제 전시는 물론 국제포럼 개최, 세계사 속 국가폭력 도시들과의 연대, 미군정 책임 등 미완의 과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영화와 문화예술 등 다양한 분야로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 파리 제주4.3 국제특별전=세계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 시작은 지난해 4월 9일부터 15일까지 프랑스 파리(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 열린 '제주4·3 국제 특별전: 진실과 화해에 관한 기록'이다.
이 전시회는 당시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개막식에는 주프랑스한국대사관과 주프랑스한국문화원, 파리한글학교 관계자 및 교민사회, 현지 외국인 등이 참석해 제주4·3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전시회에서는 유네스코에 제출된 1만4,673건의 기록물 가운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핵심 사료들을 선보였다. 생존자 증언자료, 군법회의 관련 기록, 정부 공식 문서 등 4·3의 실상을 증언하는 주요 기록물의 복제본이 전시돼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전시장을 찾은 한 프랑스인은 “한국 현대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극을 알게 됐고, 갈등을 극복한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4·3을 해결해 나가는 제주도민의 노력이 인상 깊다”는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 로마 4·3 국제포럼=지난해 6월에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제주4·3평화 미사와 레퀴엠 공연, 제주4·3평화 국제포럼 등 4·3 관련 행사가 이어졌다. 빌라 알티에리 박물관에서는 '제4회 진실과 정의를 위한 제주4·3 국제포럼'이 개최됐다. '평화를 위한 연대-평화운동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한 이 포럼에는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문창우 천주교 제주교구장 주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제주4·3의 평화정신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기조 강연에 나선 크리스티안 무스레흐너(Christian Mooslechner) 다흐슈타인 유럽포럼 조직위원장은 '세계평화를 위한 유럽사회의 역할과 과제'를 주제로 강연하며, 현재 유럽이 직면한 평화 과제와 국제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진 포럼에서는 제주도의회 하성용 4·3특별위원장이 좌장을 맡아 제주4·3의 역사적 의미와 현재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참석자들은 과거사 진실 규명의 중요성과 함께 평화·인권 가치 확산을 위한 국제 협력 방안을 깊이 있게 논의했다.
▲ 오사카 4·3 국제특별전=지난해 12월에는 일본 오사카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제주4·3 국제 특별전'이 열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하고 제주도의회와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후원하는 이번 특별전은 재일동포의 삶의 공간에서 제주4·3의 진실과 기억을 국제사회와 공유하고 연대의 의미를 되새기는 자리로 마련됐다.
특별전은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의 과정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까지의 노력 △일본 내 제주4·3 희생자 추모와 연대의 발자취를 중심으로 구성됐다. 형무소에서 보내온 엽서, 도의회 4·3 피해신고서 등 주요 등재 기록물 복본과 사진·패널 자료, 세계기록유산 등재의 의미를 소개하는 영상이 함께 전시돼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참석자들은 국경을 넘어 이어져 온 추모와 연대의 노력이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성과로 이어졌다는 데 깊은 공감을 표했다. 전시장을 찾은 한 일본인 관람객은 “두 번 다시 이러한 비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역사를 알게 됐다”고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 자카르타 제주4·3 전시=올해 5월에는 제주해녀 문화와 연계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도 제주4·3 관련 전시가 열렸다. '기억의 섬, 삶의 바다-제주' 특별전에서는 4·3 관련 사료들이 전시되고, '제주의 이야기' 토크쇼에서는 4·3 유족이 직접 무대에 올라 이야기를 전했다.
이 행사는 동남아시아권에서는 처음 열리는 4·3 관련 전시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 뉴욕 국제특별전과 세계 무대에 오른 4·3 영화=올해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는 뉴욕 아시안 영화제와 연계해 제주4·3 국제특별전이 열렸다. 영화제에 참석한 세계 관객들에게 제주4·3의 역사와 평화·인권의 가치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특별전은 영화제 공식 초청작인 제주4·3 장편영화 '한란'과 '내 이름은'의 역사적 배경인 제주4·3을 국제사회에 소개하고, 제주4·3의 역사적 진실과 화해·상생의 과정을 세계 관람객과 공유하기 위한 자리다.
개막식에는 주뉴욕대한민국총영사관과 뉴욕한국문화원, 뉴욕한인회, 재미제주도민회, 재미4·3기념사업회·유족회, 민주평통 뉴욕협의회 관계자, 현지 언론 등이 대거 참석했다. 뉴욕아시안영화제(NYAFF) 회장과 영화제 관계자, 영화 '한란'의 하명미 감독 및 배우 김향기, 영화 '내 이름은'의 정지영 감독을 비롯해 현지 언론, 문화예술인, 관람객들도 함께해 전시 개막을 축하했다.
참석자들은 전시를 둘러보며 제주4·3의 발생 배경과 전개 과정, 당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미군정 시기의 역사적 상황 등을 살펴봤다. 또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정부의 공식 사과와 보상, 화해와 상생에 이르기까지 제주4·3의 해결 과정을 담은 기록과 사진, 영상을 관람했다.
뉴욕 영화제에서는 영화 '한란'과 '내 이름은'이 상영되면서 제주4·3을 세계에 알렸다. '내 이름은'은 올해 1월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 포럼 부문에 공식 초청되기도 했다.
▲ 국회 특별전시회=제주4·3 기록물의 세계화와 더불어, 전국화와 대중화를 위한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회에서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제주4·3, 기록과 예술로 밝혀낸 진실: 국회 4·3 특별전’이 열렸다.
4·3의 역사적 진실과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국민과 공유하고, 과거사 해결 과정에서 국회가 기울여온 입법 노력을 조명하기 위해 마련된 이 특별전에는 당시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해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전시는 △형무소에서 온 엽서, 제주도의회 4·3 피해신고서, 진상규명 관련 도서 등 세계기록유산 등재 기록물(복제본) △김석범 작가의 '화산도',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이산하 시인의 '한라산' 등 문학작품 △강요배 화백의 '동백꽃 지다', 박경훈 작가의 '옴팡밭' 등 미술작품 △국립제주트라우마치유센터 치유프로그램 참여자의 작품 등이 함께 전시돼 4·3의 아픔과 회복, 화해의 여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줬다. 4·3이 남긴 아픔과 회복,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예술로 전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전시장 한편에는 1990년대부터 시작해 2000년 제주4·3특별법 제정과 2021년 전부 개정 등 국회의 입법 노력 과정을 담은 사진 자료도 마련돼 4·3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한 국회의 지속적인 역할을 조명했다.
▲ 부산 특별전시회=올해 6월에는 부산에서도 세계기록유산 등재 1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열렸다. ‘시간을 건너온 기억-78년의 시간을 넘어, 세계의 기억으로’를 주제로 한 이 전시에서 부산시민들은 국가폭력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해 온 제주4·3의 여정과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받은 기록물의 가치를 마주했다.
전시는 ‘기억과 증언’, ‘진실과 화해’ 두 주제로 구성됐다. '기억과 증언’ 공간에서 관람객들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부터 1954년 한라산 금족령 해제까지 이어진 제주4·3의 역사를 따라갔다. 형무소에서 가족에게 보낸 엽서와 피해신고서, 증언 채록 기록은 희생자와 유족이 간직해 온 아픔을 생생하게 전하며 관람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진실과 화해’ 공간은 4·3 유족과 도민사회의 노력으로 이뤄낸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의 역사, 그리고 제주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했다. 사진 한 장, 엽서 한 통, 증언 하나하나가 제주4·3의 역사와 진실을 입체적으로 전했고, 한 사람의 기억이 기록으로 남아 세계의 유산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관람객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 국제학교서 열린 특별전시=전국 학교에서 평화·인권교육이 진행되는 것과 더불어, 지난해 12월 제주영어교육도시에 소재한 국제학교에서도 제주4·3 특별전시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본관 로비에서 '제주4·3 기억과 화해의 길'을 주제로 한 4·3 기록유산 등재 기념 특별전시회가 그것이다.
전시물은 4·3 진상규명 노력, 기록물 보존 과정,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과정 등을 담은 사진과 설명 패널로 구성됐으며, 국제학교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자료를 영어로 제공했다.
전시 기간 SJA Jeju를 비롯해 노스런던컬리지에잇스쿨(NLCS), 한국국제학교(KIS), 브랭섬홀아시아(BHA) 등에 다니는 많은 학생과 교사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 갈 길 먼 4·3 세계화의 길…과제는?
그럼에도 4·3기록물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화를 위한 방향과 과제를 명확히 정립하고, 이를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해 나갈 필요성이 제기된다.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제주4·3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사건이 지닌 세계사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이를 객관적인 자료에 기반해 국제사회에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제주4·3은 비록 제주도에서 발생한 사건이지만 국제적인 관심 속에서 일어난 사건”이라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 공권력이 개입해 자국민을 희생시킨 첫 번째 사례라는 점에서 세계사적으로도 의미가 매우 깊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이 지닌 세계사적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끄집어내 세계 시민들에게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군정의 책임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회성 행사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미국에 가서 일회성 토론회나 심포지엄을 열거나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만으로는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며 “제주도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발굴된 미국 관련 자료를 압축·정리해 우선 ‘미국 책임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한 보고서가 마련돼야 이를 미 의회나 미국 현지에 전달할 수 있고, 그래야 미국 측에서도 관련 사실과 책임 문제를 납득하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유사한 역사적 경험 지역과 교류.연대...미군정 역할 규명"
제주특별자치도의회 4·3특별위원장을 지낸 하성용 의원(더불어민주당·서귀포시 안덕면)도 아직 충분히 풀리지 않은 과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국제적 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 의원은 “재일제주인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이어가는 한편, 국내외 국가폭력 피해지역과의 교류와 연대를 더욱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4·3 당시 미국과 미군정의 역할 등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않은 과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조사와 국제적 논의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래세대와 세계인이 4·3의 가치를 함께 배우고 공감할 수 있도록 교육과 학술교류, 콘텐츠를 통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외 교육과 학술교류를 확대하고 다양한 디지털·영상 콘텐츠 등을 통해 4·3이 남긴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보다 널리 공유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4·3의 세계화가 단순히 비극과 희생의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하 의원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화해와 상생을 통해 4·3을 극복해 온 과정과 다시는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를 세계와 공유하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4·3의 가치가 국내외 연대를 통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광주 5·18과 여순 10·19 등 국내 국가폭력 피해지역은 물론 대만과 베트남 등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지역과의 교류를 통해 4·3의 경험과 교훈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연대는 제주4·3의 경험과 교훈이 제주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함께 성찰하고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주4·3이 인류 보편의 평화 자산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제주의 아픈 역사를 평화와 인권, 화해와 상생의 가치로 승화시키는 것”이라며 “이를 통해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인류 공동의 교훈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제주4·3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아 후속 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하 의원은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4·3 세계화의 완성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라며 “세계가 인정한 4·3의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기록관 건립과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이를 연구·교육·전시와 연계해 세계인이 보다 쉽게 4·3을 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결국 4·3의 세계화는 단순히 4·3이라는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라며 “4·3의 역사적 진실을 지키고 그 과정에서 얻은 교훈과 평화·인권의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며 미래세대에 온전히 전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4·3 세계화”라고 밝혔다.
◇ 제주도 "4.3의 역사.가치, 국내 넘어 세계와 공유...관련사업 적극 추진"
고미경 제주도 4.3지원과장은 제주4·3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도민과 국민, 미래세대가 4·3의 역사를 함께 기억하고 그 가치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과장은 “도민과 국민, 특히 미래세대가 함께 제주4·3을 기억하고 그 가치를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이 4·3 세계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기반”이라며 “4·3 80주년을 앞두고 이러한 기반을 더욱 확고히 다져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4·3의 역사와 가치가 국내를 넘어 세계와 공유될 수 있도록 관련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겠다”며 “아울러 4·3의 의미를 미래세대에 계승하고 국제사회와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헤드라인제주>
*이 기사는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원과 취재협조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