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제주4·3영화제 단편 경쟁 부문 '불란지' 본선 진출작 10편이 선정됐다. 올해 공모에는 역대 가장 많은 526편이 출품돼 제주4·3의 기억과 평화·인권의 가치를 다양한 시선으로 풀어낸 작품들이 관심을 모았다.
제주4·3평화재단은 올해 '불란지' 공모에 극영화 461편, 다큐멘터리 31편, 애니메이션 31편, 기타 3편 등 모두 526편이 출품됐다고 28일 밝혔다.
예선 심사를 통해 80편을 추린 뒤 추가 심사와 심사위원 대면 논의를 거쳐 최종 10편을 본선 진출작으로 선정했다.
선정된 작품은 △'보물찾기'(김은서)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이성만) △'생존수영'(문성원) △'포효하는 잿더미들'(안유리) △'돈즈루보'(이원식) △'꿈엔들, 정암'(김우식) △'돌아온 자리'(김진국) △'갱년기 소녀 투쟁기'(장서윤) △'의주의 언어'(장주선) △'돔-류비'(조정강) 등이다.
올해 출품작은 제주4·3을 비롯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과 국가폭력 등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와 기억을 다룬 작품부터 이주와 디아스포라, 제도와 정체성,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연대 등을 조명한 작품까지 폭넓은 주제를 담았다.
특히 '불란지' 출품작은 2024년 제2회 영화제 당시 295편에서 지난해 341편, 올해 526편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보다 185편, 54.3% 늘어난 규모다.
본선 진출작 가운데 '보물찾기'는 제주 동광리에 사는 여덟 살 소녀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노래하는 돌'을 찾아 나서는 과정에서 제주4·3의 비극과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픽션과 논픽션을 결합해 어린이의 시선으로 4·3의 기억을 현재로 불러낸다.
'돈즈루보'는 일본 나라현에 남아 있는 지하 군사시설을 찾아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을 추적한 작품이다. 현장 조사와 기록을 통해 잘 알려지지 않았던 강제동원의 역사를 되짚는다.
실험영화 '포효하는 잿더미들'은 홋카이도에서 사할린을, 제주에서 대마도를 바라보며 바다에 남겨진 죽음과 목소리를 불러낸다. 시적인 이미지와 사운드를 활용해 4·3의 기억을 식민과 전쟁, 냉전과 디아스포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역사 속에서 바라본다.
'우리는 외계인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1983년 전라도의 한 농촌 마을에서 사라진 누나를 찾아 나선 소년들의 이야기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외계인'이라는 장르적 상상력을 통해 감시와 통제, 침묵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기억을 우회적으로 다룬다.
이주와 디아스포라를 소재로 한 작품도 눈에 띈다.
'꿈엔들, 정암'은 1938년 일제강점기 만주로 집단 이주한 충북 출신 조선인들이 일군 정암촌과 그 후손들의 삶을 기록했다. 말과 풍습, 노래로 공동체를 이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고향과 디아스포라의 의미를 확장한다.
'돌아온 자리'는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팔라우로 강제동원됐던 외할아버지의 기억을 손녀의 시선으로 기록했다. 고향 여수로 돌아온 뒤 여순사건까지 겪은 한 개인의 삶을 통해 강제동원과 귀환, 또 다른 국가폭력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상처와 세대 간 기억의 전승을 담았다.
애니메이션 '돔-류비'는 카자흐스탄 우슈토베 고려인 공동체의 언어와 음식, 이웃 간 교류와 일상을 그렸다. 실제 촬영 영상에 그림을 덧입히는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해 타국에서 서로를 돌보며 공동체를 이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오늘의 삶과 제도,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도 본선에 올랐다.
'생존수영'은 참사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학생 준과 실적과 재계약 압박에 놓인 기간제 교사 세연을 통해 개인의 고통 뒤에 놓인 경쟁과 제도적 문제를 들여다본다. 상실과 애도의 감정을 '물'과 '생존'의 이미지로 풀어내면서 서로 다른 고통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연대도 담았다.
'의주의 언어'는 제3국에서 태어난 의주가 탈북민 영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언어와 정체성, 소속의 문제를 다룬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면서도 '탈북민'으로 규정되는 인물을 통해 한 사람의 복합적인 정체성을 하나의 범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되짚는다.
'갱년기 소녀 투쟁기'는 24살에 조기폐경 진단을 받은 감독이 자신의 신체적 변화와 삶을 직접 기록한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개인적인 경험을 유머와 자기서사로 풀어내며 창작자이자 노동자로 살아가는 젊은 여성에게 요구되는 신체적·사회적 기준을 돌아본다.
심사위원들은 올해 출품작에 대해 "제주4·3을 직접 다룬 작품을 넘어 식민과 분단, 이주와 차별,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문제까지 4·3의 가치를 확장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이 고르게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또 서로 다른 형식과 시선으로 기억과 연대의 의미를 오늘의 언어로 풀어낸 작품들을 본선에 선정했다고 밝혔다.
예선 심사는 김민경 프로듀서, 김보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김설해 감독, 변지철 연합뉴스 기자가 맡았다.
제주4·3영화제는 4·3의 가치를 담은 새로운 영화·영상 콘텐츠를 발굴하고 창작자들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2024년 제2회 영화제부터 단편 경쟁 부문 불란지를 도입했다. '불란지'는 반딧불이를 뜻하는 제주어로, 어둠 속에서도 빛을 내는 반딧불이처럼 제주4·3의 아픔을 넘어 평화와 인권, 희망의 가치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주4·3을 직접 소재로 한 작품에 한정하지 않고 폭력과 저항, 사회적 불평등과 차별, 이주와 단절, 회복과 치유 등 4·3의 역사와 가치에서 확장해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다.
불란지 본선 진출작은 영화제 기간 상영되며 본심을 거쳐 대상과 극영화상, 다큐멘터리상 등을 선정한다. 관객 투표를 통한 관객상도 가린다.
제4회 제주4·3영화제는 오는 11월 22일부터 28일까지 제주콘텐츠진흥원 Be:in 공연장에서 열린다.
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올해 불란지에는 역대 가장 많은 작품이 출품돼 더욱 다양한 이야기와 시선을 만날 수 있게 됐다"며 "관객들이 영화제를 통해 4·3의 기억이 오늘의 삶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