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읍 고창선·조천읍 현정욱 씨가 전한 ‘그날의 이야기’
4.3당시 13살이던 애월읍 증언자의 형은 이른바 '외도지서 장작사건'으로연행됐다가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었다. 형이 희생된 일로 아버지는 '검속자 가족'으로 몰려 죽을 위기에 직면했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두 살 밖에 되지 않았던 조천읍 지역의 증언자. 그가 기억하는 것은 할머니가 붙잡혀 갈 때 몸부림치며 저항하던 모습, 할머니 댁이 불타는 모습, 그리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949년 겨울 무렵 제주읍내로 이사 갈 때의 광경 뿐이다.
제주4·3연구소가 주최한 제주4·3 제78주년 기념 스물다섯 번째 증언본풀이 마당이 27일 오후 2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열렸다.
‘4·3과 기억-2003 하귀에서 1948 조천으로’를 주제로 한 이날 증언본풀이 마당은 하귀와 조천 두 지역을 중심으로 현재와 과거의 4.3 이야기를 풀어갔다. 두 지역 출신인 고창선(남·1935년생), 현정욱(여·1948년생)씨가 증언에 직접 참여해 생생한 경험담을 전했다.
하귀리 출신의 고창선씨는 형인 고창만이 이른바 ‘외도지서 장작사건’으로 연행됐다가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뒤에 행방불명된 4·3유족이다.
"형님은 1928년생으로, 그 때 나이 스물 두살이었다. 당시 우리 형님은 '강의록'이라고, 방송통신 교재 같은 걸로 혼자 공부만 했다. 우리 동네에 독학한 사람이 세 명인데 그 세 분이 아무래도 책을 보니까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1948년 11월에, 외도지서 장작사건이 터졌다. 그때 외도국민학교에 군부대가 주둔했는데, 외도지사에서 '군인들이 밥 해먹을라고 해도 화목이 없으니 장작이 필요하다. 장작하러 나오라'고 했다. 호당 한 사람씩 나오라고 했다.
우리 아버지는 좀 느낌이 이상하다고 형님 말고 자신이 직접 간다고 했다. 그러나 형님은 '나이 많은 늙은이가 어떻게 가냐'며 집을 나섰는데, 그날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장작하러 간 형님 소식이 끊긴 후 얼마없어 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접했고, 다음해 3월쯤 대구형무소에서 엽서가 와서 알게 되었다.
그는 이 기억을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작사건'뿐만 아니라, 1948년 외도지서에서 자수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며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자수공작사건'에 대해서도 전했다.
고창선씨는 누구보다 앞장서서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노력했다고 한다. 하귀리 영모원 조성도 주도했다. 영모원은 화해와 상생의 4·3정신을 상징하는 추모공간으로 국내외 많은 이들이 찾는 공간이 됐다.
두번째 증언에 나선 현정욱씨.
조천면 신흥리 출신으로, 조천중학원장을 지냈던 부친 현보규는 1949년 불법 재판인 2차 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그 해 10월 2일 정뜨르 비행장에서 총살당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1946년 3월 조천중학원 설립에 참여해 중학원장을 맡았다. 4.3 초기부터 조천중학원은 토벌대의 표적이 돼 교사, 학생 할 것 없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아버지 역시 토벌대에 붙잡혀 불법 재판을 거쳐 비행장에서 총살됐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 내가 두 살때 돌아가셨으니까, 기억나는 건 없어요. 들어서 아는 이야기들이지. 어릴 때 기억이 나지 않는데 딱 세 장면만은 기억이 남아 있어요. 하나는 비가 와서 집에 물이 막 흘러서 빠지지 않고 가득 차 있는데, 우리 할머니가 바닥에 누워서 막 뒹글었어요 누가 잡아가겠다고 하니까, 그렇게 몸부림 친 거겠죠. 다음은 우리 할머니 집을 불 태웠을 때 같은데...마지막으로 구르마(수레)에 이삿짐 싣고 이사갈 때, 그땐 항상 어머니 등에 업혀 있었어요."
그의 아버지 현보규는 2007년 정부로부터 희생자 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다 2014년 정립 유족회에서 벌인 불량위패 사건으로 4·3평화공원 앞에서 모조 위패가 불태워지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
이날 본풀이 마당에서는 시인 김순남의 시낭송과 모다정밴드의 노래공연이 펼쳐졌다.
제주4.3연구소가 매해 개최하고 있는 ‘증언본풀이 마당’은 제주4.3의 아픔을 모두와 함께 나누고 상처의 치유를 모색하는 한편, 4.3의 역사적 진실을 대중과 공유하며 기억을 계승하기 위한 자리다.
제주4·3연구소 김정기 이사장은 개회사에서 “‘4·3과 기억–2003 하귀에서 1948 조천으로’라는 주제처럼, 이번 행사는 현재와 과거를 잇는 4·3의 시간을 하귀와 조천 지역의 기억을 통해 되짚어보고, 그 의미를 미래세대에 전하는 자리”라며, “증언본풀이 마당이 4·3이 지닌 빛과 어둠의 그 양면성을 더욱 깊이 공감하고 함께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