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보고 싶어요. 아버지, 제 이름은 알고 있나요.”
3일 제주4·3평화공원에서 봉행된 78주년 4·3희생자추념식에서 고계순씨(78·제주시 아라동) 사연이 소개됐다.
1948년 6월생인 고씨는 태어난 지 6개월 무렵, 아버지(고석보)를 잃었다. 그해 겨울 아버지는 군경 토벌대에 총살당했다. 어머니(김보희)는 쌓여 있는 시신 속에서 자신이 꿰맸던 양말을 신은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다.
남의 밭에 가매장됐던 시신은 구르마에 실려 봉개동 가족묘지에 안장했다.
어머니는 홍역을 앓아 고열에 시달리는 고씨를 업은 채 남편의 시신을 수습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고씨는 고열로 인해 청력을 거의 상실했다.
4·3희생자의 딸이라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까봐 고씨는 학교를 다녀야 할 무렵 군대에서 제대한 작은아버지가 결혼하면서 그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렸다.
작은아버지 딸로 평생을 살아온 그는 70여년 만인 지난 2월 친아버지의 이름을 되찾게 됐다. 제주4·3위원회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결정에 따라 친아버지 자녀로 가족관계를 정정할 수 있게 됐다.
고씨는 ‘고계순은 희생자 망 고석보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는 주문이 담긴 결정서를 받아 아버지 묘에 바쳤다.
이날 추념식에서 배우 김미경은 고씨의 사연을 소개하며 “갓난쟁이 두고 가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 딸 이름은 알고 계세요? 난리가 끝나면 이름도 짓고 호적에도 올리겠다고 다짐했지만 끝내 올리지 못한 딸”이라며 “하지만 오늘 보고 계시지요. 당당히 아버지 딸로 앉아있는 모습을요”라고 말했다.
고씨에게 “그 모진 세월 어찌 견디며 살아오셨을까. 그 긴 세월 기다림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우린 안다”며 “하늘에서 듣고 계실 아버지를 향해 이제 당당히 불러보십서”라며 아버지 사진을 건넸다.
고씨는 “아버지 보고 싶어요”라며 눈물로 쏟아냈고, 절절한 사연에 김민석 국무총리와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등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가족관계등록부를 정정하려면 친자확인 또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 등 인지(認知)청구의 소를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70여 년 전 매장됐거나 행방불명 된 희생자의 유전자 감식은 불가능했다.
2021년 4·3특별법 개정으로 특례 규정이 신설되면서 4·3으로 인한 가족관계 사실을 확인·결정할 수 있게 됐다.
현재까지 잘못된 가족관계 정정 신청 건수는 친생자관계 확인 신청 230건을 포함해 총 509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친생자 관계 확인은 4건이 인정을 받았다.
도는 신청 기간이 오는 8월 31일까지인 만큼 가족관계 정정이 필요한 희생자와 유족이 빠짐없이 신청할 수 있도록 홍보에 나섰다.
오영훈 지사는 “아직도 제주에는 가족관계가 뒤틀린 채 살아오신 분이 많이 계신다”며 “사실상의 가족관계를 신속히 확인해 억울한 유족의 올바른 이름을 돌려드리고, 가족관계 정정 이후의 보상금 지급 절차도 책임 있게 처리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