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효진 비상임논설위원·사운드오브뮤직 대표
제주에서 시작된 한 곡의 노래가 로마를 거쳐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한 작곡가의 손에서 태어난 '평화의 노래'는 단순한 공연을 넘어 제주4·3의 기억을 세계와 연결하는 예술적 발화이자 하나의 운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로마 교황령 성당에서의 세계 초연은 상징적이었다. 오랜 시간 지역의 아픔으로 머물러 있던 제주4·3의 기억이 인류 보편의 언어인 레퀴엠 형식을 통해 세계 무대에 놓였기 때문이다. 라틴어로 불리던 전통의 죽음의 미사가 제주인의 숨과 이야기로 채워졌고 그 안에 담긴 슬픔과 기도는 특정 지역의 비극을 넘어 인간 존재의 고통과 존엄을 묻는 질문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다시 제주. 성금요일, 제주성안교회에서 울려 퍼진 '평화의 노래'는 그 질문에 대한 또 하나의 응답이었다. 교회라는 공간에서 그것도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는 날에 레퀴엠을 통해 제주4·3을 위로한다는 시도는 낯설고도 필연적이다. 이는 단지 종교적 의식이 아니라 공동체의 상처를 직면하고 끌어안으려는 사회적·문화적 실천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라틴어 원곡을 한국어로 재구성하며 '공감의 언어'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그레고리안 성가와 제주 민요, 아리랑이 한 작품 안에서 만나는 순간 음악은 더 이상 특정 전통에 머물지 않고 기억을 번역하는 매개가 된다.
북촌리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설운아기'의 비극, 바다를 향한 어머니들의 기도를 담은 '이어도사나'의 울림은 지역의 구체적 서사를 통해 오히려 보편적 감정을 환기시킨다.
특히 주목할 지점은 이 작업이 '기억을 재현하는 예술'을 넘어 '기억을 움직이게 하는 예술'이라는 점이다. 100여명의 연주자와 합창단, 청소년들이 함께 만들어낸 울림은 단순한 재현을 넘어 공동체적 참여를 이끌어낸다. 예술은 여기서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겪고 나누는 경험이 된다. 여기에 더해 이 음악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다음 세대에게 기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청소년 앙상블이 함께한 무대는 과거의 비극이 현재의 삶과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기억이 살아 있는 현재진행형의 이야기임을 증명한다.
특히 제주 교회가 4월 3일을 맞아 성금요일에 이 음악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과 희생을 통해 인간의 폭력과 아픔을 끌어안고 회복으로 나아가려는 신앙적 의미를 지역의 역사와 연결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교회는 이 자리에서 단순한 종교 공간을 넘어 공동체의 상처를 기억하고 위로하며 화해를 모색하는 공적 역할을 감당한다.
로마에서 제주로 이어진 이 여정은 단순한 공연의 순환이 아니다. 그것은 지역의 비극이 세계와 만나고 다시 지역으로 돌아와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이다. '평화의 노래'는 그 흐름 속에서 제주4·3의 기억을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인류 보편의 이야기로 확장시키고 있다.
왜 교회에서 레퀴엠으로 제주4·3을 노래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이미 음악 안에 있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슬픔을 공동의 언어로 바꾸며, 끝내 평화를 향해 나아가려는 움직임. '평화의 노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운동이며 기억을 넘어 회복으로 가는 길 위에 놓인 작은 그러나 분명한 이정표다.
제주에서 시작된 이 노래는 이제 묻는다. 우리는 이 기억을 어디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가. 그리고 그 나눔이 어떤 평화를 만들어낼 것인가를. 그리고 지금, 여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