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제주 4·3의 78주년이다. 김대중 정부 때 4·3특별법이 만들어지고, 노무현 정부 당시 4·3 희생자에 대한 정부의 첫 공식 사과가 있었으며,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서 ‘제주 4·3희생자 추념일’이 국가 기념일로 제정됐다. 차근차근 4·3에 대한 진실 규명이 이뤄져 왔고, 지난해에는 4·3기록물 1만4673건이 유네스코기록유산에 등재되는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4·3을 왜곡하는 일부 인사가 존재한다. 이들이 주장하는, 4·3을 공산폭도들의 반란으로 보는 견해는 너무 단면적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유격대가 경찰지서 12곳을 습격한 데서 4·3이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에서 보면 100% 틀린 건 아니다. 그러나 1947~1948년 당시 남로당 제주도민들만 특별히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돼 있고, 그래서 공산 정부를 구성하고자 무장봉기를 했다고 보는 데는 동의하기가 어렵다. 필자가 보기에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1947~1948년 시점에서 제주도민들은 친미/반미도 아녔고, 친소/반소도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반일이 대세였고, 오직 하나 된 자주독립 통일 국가만을 염원했다.
4·3은 자발적이고 자연발생적인 시위이다.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자주독립의 열망과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한편으로 친일파가 활개를 치고 부정부패가 근절되지 않아 주민들의 삶이 피폐한 상태로, 당시 행정권을 갖고 있는 미군정에 제대로 된 통일 자주독립의 정부를 구성해 달라며 요청한 것뿐이다. 한반도의 주인인 대한민국 국민들이, 그리고 제주도민이라면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일 제주가 소련군정하에 있었다면, 소련군정에게도 똑같이 요구했을 것이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에게 요구한 것을 친소적이고 공산주의적이며 정부반란적인 봉기라 단순화하고 색깔론으로 치부하는 것은, 오히려 도민들에게 가해진 무책임한 학살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고자 한 정치권의 위장이자 왜곡이다.
그래서 과거와 같은 이념적 굴곡에서 벗어나 4·3의 진실을 보다 더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오해와 왜곡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범국민위원회 등 여러 4·3 단체들이 4·3 전국화에 나선 것은 큰 성과이자 보람일 것이다.
한편으론 4·3을 학살로 이름 붙이는 것이 희생자들의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에서 찬동하기가 어렵다. 물론 제주도민의 10%인 3만여 명의 억울한 죽음을 생생히 드러내는 데는 학살만큼 적절한 명명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도민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그 죽음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사후에라도 제대로 명명해 줘야 덜 억울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이제는 당시 지워진 제주4·3의 진실한 목소리를 되찿고, 4·3의 정명을 염원하는 78주년이 됐으면 한다. 4·3의 항쟁과 참혹한 비극, 그리고 침묵을 강요 당했던 세월을 넘어 진상규명에 이르기까지의 지난한 역사를 찿고, 그늘진 곳에 묻혀 잠겨 있는 4·3이라는 이름을 바로 세우는 시작점이 됐으면 한다.
4·3에 대한 정명은 제주도민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