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와의 간담회에서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와 소멸시효를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국가가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게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것과 같이 영구적으로 책임지도록 반드시 만들어 놓겠다”고 말했다.
7년 7개월 동안 전개된 제주4·3사건(1948~1954)에서 약 2만5000명의 도민이 희생됐다.
집단 학살의 장소와 희생자는 ▲북촌초 북촌리 주민 학살(299명) ▲함덕백사장·서우봉 학살터(281명) ▲정방폭포 학살터(235명) ▲표선백사장 학살터(234명) ▲성산포 터진목 학살터(213명) ▲도두리 동박곶홈 학살(183명) 등이다.
일개 병사가 이 같은 광기어린 집단 학살을 자행하기는 어렵다. 군은 지휘와 명령 체계에 움직이는 조직이다.
제주4·3이 발발하자 약 한 달 후인 1948년 5월 6일 육군 9연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한 박진경 중령은 양민을 무차별 검거·연행, 강경 진압 작전을 주도하고도 그해 6월 대령으로 진급했다.
함병선 중령은 제2연대장 부임 후 1949년 1월 조천면 북촌리 주민의 집단 학살을 주도하고, 두 차례 군법회의 최고지도관으로서 재판 절차 없이 수많은 민간인을 처벌했다.
1948년 11월 17일 제주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앞서 송요찬 9연대장은 해안선으로부터 5㎞ 이상 들어간 중산간 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배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중산간 마을 주민들의 희생은 물론 가옥은 잿더미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46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전범재판)에서 피고 24명 가운데 12명이 사형 판결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죄목은 정당한 이유 없이 침략 전쟁을 벌이는 ‘평화에 반한 죄’였고, 유대인 등 민간인을 학살한 ‘반인도적 범죄’였다.
이들은 아돌프 히틀러가 혼자 계획했고, 본인들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장은 국가나 상급자의 명령에 따른 행위라도 국제법상 범죄는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며 나치 수뇌부에 사형을 선고하며 단죄했다.
독일은 국내 형법에 전범 처벌 규정을 두면서 나치 잔재를 청선하기 위한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2024년 8월 나치 시절 강제수용소에서 타자수로 일했던 99세 할머니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나치의 집단 학살을 도왔다는 ‘살인 방조’ 혐의가 인정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4·3당시 양민을 학살한 국가폭력 가해자에 대해 역사적 단죄에 나섰다. 그 방법은 형사상 공소시효, 민사상 소멸시효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이다.
2005년 설립된 독립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피해자 신청을 받아 국가폭력 사건에 대해 ‘진실 규명 결정’을 내리고 있다.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민사 영역에서 소멸시효 적용을 배제했다.
이제 남은 것은 4·3 당시 양민을 집단 학살한 군 수뇌부에 대한 형사처벌이다. 이들 가운데 생존자는 없어서 서훈과 공적 박탈, 국가유공자 등록 해지, 현충원 안장 자격 박탈을 검토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오늘 최악의 국가폭력 사건인 제주4·3 참배를 간다”며 “영문도 모른 채 이유 없이 죽창에 찔리고 카빈총에 맞고 생매장당해 죽은 원혼들의 명복을 빈다”고 위로했다. 이어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