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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국가폭력 ‘시효 없는 단죄’가 정파적이라는 조선일보

관련인물 명예회복 법제화 부정/논쟁 진상규명
요약

제주 4·3 사건 78주기를 맞아 이재명 대통령이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소멸시효 폐지를 약속했으나, 조선일보는 이를 '정파적 역사바로세우기'라고 비판했다. 제주 지역 언론들은 이를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며, 조선일보의 논조가 4·3 사건의 본질인 민간인 학살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피해가 극심했던 제주 4·3 사건이 올해로 78주기를 맞았다. 미군정 시기던 1948년 당시 제주도민 10분의 1에 해당하는 3만여 명이 공권력에 의해 희생됐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29일 4·3 희생자 유족과 만나 “국가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소멸시효를 완전히 배제해서 살아있는 한 형사책임은 끝까지 지고 상속재산이 있는 한 자손들까지 책임을 지도록 민사 대상 소멸시효도 폐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이 사안을 “나치 전범을 처벌하는 일”에 비유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3일 “공소시효라는 장벽 뒤에 숨어 국가폭력의 주범들은 심판을 피해 갔다”며 “국가의 존재 이유와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야만적 폭력을 휘두른 이들에게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이 대통령의 입장에 호응했다. 그러면서 “국가폭력에 대한 확실한 단죄만이 진정한 치유와 화해로 나아가는 유일한 해법”이라며 ‘반인권적 국가범죄의 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통과를 예고했다. 주요 신문 중 이와 같은 움직임을 우려한 곳은 조선일보 뿐이었다.

조선일보는 3월30일자 <정파적 ‘역사바로세우기’ 아닌지 돌아봐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국가폭력 범죄자에 대한 형사·민사 시효 배제는 ‘진실과 화해’ 원칙을 넘어 범죄자를 가려내 심판하겠다는 것이다”라면서 “4·3 사건과 여순 사건 모두 남로당의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현대사의 비극이다. 일어난 지 80년이 돼가는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가려질 리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 신문은 “박진경 대령에 대한 국가 유공자 취소처럼 일방적 발언을 근거로 서훈이 취소되고 단죄될 가능성이 있다”며 “또 다른 분란과 분열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는 제주지역 언론과 상반된 논조다. 제주권역 제민일보는 3월31일자 사설 <4·3 유족의 한(限) 풀어준 대통령 약속>에서 “4·3처럼 대규모 민간인 학살을 초래한 국가 폭력범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 책임을 묻지 못하는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라며 “도민들 역시 이 대통령이 선명한 4·3 해결책을 제시했다며 반기는 분위기”라고 환영했다.

조선일보는 4·3 사건 책임자 처벌과 역사 바로 세우기에 줄곧 부정적이었다. 지난해 12월17일자 사설 <대통령 지시, 한 호흡 늦추고 신중할 수 없나>에선 이 대통령이 4·3 사건 진압을 위해 파견됐던 박진경 대령의 국가 유공자 지정 취소 검토를 지시하자 “이 대통령은 남로당 암살범의 발언을 근거로 한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남로당 반란을 진압하려 나섰던 군경들이 지금 이 상황을 본다면 나라를 지키려 했겠나”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 신문은 문재인정부 시절이던 2018년 4월3일자 사설 <‘제주 4·3 委’ 비판하면 징역 살린다는 ‘4·3 특별법’ 개정안>에서 “문 대통령은 추모사 어디에서도 막대한 피해자를 낳은 4·3 사건을 일으킨 남로당과 배후 세력인 북한 책임을 거론하지 않았다”며 “세계 어느 나라든 무장 반란이 일어나면 군과 경찰이 진압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4·3 사건 주동자 중에는 나중에 월북(越北)해 평양 혁명열사릉에 묻힌 사람들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논조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사건의 본질을 흔든다.

26년 전인 2000년 6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모임’은 “월간조선이 4·3 사건 희생자를 공산 폭도로 몰았다”며 조선일보 취재 거부를 선언한 적도 있다. 월간조선은 2021년에도 기자수첩을 통해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가 공산 세력이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할 목적으로 자행한 무장 폭동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제주권역 한라일보는 3일 ‘제주 4·3, 미완의 과제’ 기획기사에서 “4·3 특별법 13조에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4·3에 대해 허위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나 유족 등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다는 맹점 때문에 극우 보수 세력들이 4·3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시도들이 계속되어 왔다”고 보도했다. 이어 “5·18특별법은 왜곡·폄훼 행위자를 최대 징역 5년, 최대 벌금 5000만 원에 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대목은 조선일보 지면에선 찾기 어렵다.

2021년 2월, 4·3 사건 희생자들에게 정부가 위자료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된 4·3 특별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이던 1999년 12월16일 4·3 특별법(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역사적 순간 이후 20여년 만의 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31일 제주를 방문해 “해방 직후 정부수립 과정에서 발생했던 이 불행한 사건의 역사적 매듭을 짓고 가야 한다”며 대통령으로서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역대 대통령들이 4·3 사건 희생자들을 위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가운데, 언론이 제 역할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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