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관련 국내외 언론 보도를 매일 자동으로 수집·아카이빙합니다
기사 제민일보

"어멍이 지어준 옷으로 아버지 겨우 찾아수다"

명예회복 유해발굴 추모/기념
요약

제주 4·3 제78주년 추념식이 평화공원에서 봉행되었으며, 희생자 유족들이 참석하여 80년 전 억울하게 잃은 가족을 추모했다. 어머니가 지어준 옷으로 아버지를 찾아냈던 이옥추 씨와 산에 산다는 이유로 폭도 취급을 받았던 이임생 씨 등 유족들이 당시의 참혹한 기억과 현재의 슬픔을 증언했다.

"80년 흘렀지만 생생해"

위령비 앞, 자리 뜨지 못해

이웃 모함에 억울한 희생

행정안전부와 제주도는 지난 3일 오전 10시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제78주년 추념식을 봉행했다.

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된 이후 첫 추념식에는 이른 아침부터 희생자들의 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위령비를 찾은 유족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제주시 도련동에 거주하는 4·3희생자 유족 86세 이옥추씨는 7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평생 트라우마를 가진 채 살아왔다.

그는 "당시 도련동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폭도인지 경찰인지 모를 누군가가 집에 불을 질러 집을 잃고 우리 가족은 삼양3동에 있는 친척집으로 몸을 피했는데 다른 동네에서 온 것이 산에서 왔다고 모함을 받았다"며 "경찰이 아버지를 불러 나오라고 하더니 차에 태우고 데리고 갔는데 그 차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 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가족이 끌려간 사람들과 함께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는데 별도봉에서 사람들을 총으로 다 쏴 죽였다는 얘기가 들려 다 같이 달려가보니 시신들이 뒤엉킨 채 온통 피범벅이라 누가 누군지 얼굴도 알아보기 힘들었다"며 "어머니께서 손수 지으신 옷을 입고 계셔서 겨우 아버지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끝으로 "아직도 위압적으로 아버지를 데리고 갔던 경찰과 영문도 모른 채 따라나갔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생생하다"며 "80년 가까이 흘렀지만 참혹했던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 경찰서 근처에는 가지도 못한다"고 슬픔을 토로했다.

대전 산내 골령골 학살 사건 희생자의 또 다른 유족 이임생(85)씨는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아버지를 폭도 취급하더니 강제로 대전으로 끌고갔다"며 "그 시절에는 산에 살기만 하면 폭도 취급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 유해를 찾으러 갔는데 현장에 도착하니 포크레인으로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며 "아버지가 저 차가운 땅속에 계셨구나 싶어 배가 뒤틀릴 정도로 아프고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또 "아이스박스에 담긴 아버지 유해를 끌어안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도 서럽고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유족들은 행사가 끝나도 위령비 앞에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그리운 가족을 추모하며 마음 깊은 곳에 남은 한을 달랬다.

한편 4.3평화재단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의 공식 인정 희생자는 올해 2월 기준 1만5218명이다.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행방불명인 표석은 제주 지역 2206기, 경인 지역 576기, 영남 지역 445기, 호남 지역 420기, 대전지역 270기, 예비검속 221기 등 모두 4138기가 설치돼 있다.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