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영정사진 마주하고 오열..."얼굴 한 번 못 보고 돌아가셨는데"
"아버지, 저 아버지 보고 싶어요."
3일 오전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엄수된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서는, 70여 년 만에야 친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린 유족의 사연이 소개돼 장내를 깊은 울음으로 물들였다.
긴 세월을 돌아 비로소 ‘아버지의 딸’로 기록된 이 사연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4·3의 상처와 그리움을 고스란히 전하며 참석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사연의 주인공은 제주4·3 유족인 고계순 할머니(77)다.
4·3의 소용돌이가 한창이던 1948년 6월 태어난 고 할머니는 출생신고도 하기 전인 같은 해 12월, 아버지 고석보 씨가 희생되면서 작은아버지의 자녀로 호적에 올랐다. 4·3 희생자 유가족이라는 이유로 받을 수 있는 불이익을 우려한 가족의 선택이었다. 그렇게 그는 70여 년을 작은아버지의 딸로 살아야 했다.
전환점은 올해 2월 찾아왔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 위원회 제37차 회의에서 ‘가족관계 정정’ 결정이 내려지면서, 비로소 친아버지의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추념식에서는 이 사연이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에서 해녀를 연기한 명예제주도민 배우 김미경의 목소리로 전해졌다.
“우리 아버지, 갓난쟁이 두고 가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 품에 한 번 제대로 안아보지 못한 어린 핏덩이인데… 고계순 딸 이름은 알고 계세요? 아버지 딸 계순이, 꿈에라도 한번 보러 오시지...”
"난리가 끝나면 이름도 짓고 호적에도 올리리라 다짐했지만 끝내 올리지 못한 딸 이름 석자. 하지만 오늘 보고 계시지요 당당히 아버지 딸로 앉아 있는 딸 계순이를."
이어 김미경 씨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안고 무대에서 내려와 고 할머니 앞에 섰다. 고계순 할머니를 '삼촌'으로 칭하며, 제주어로 건넨 위로는 더욱 깊은 울림을 남겼다.
"우리 계순 삼촌 그 모진 세월 어찌 견디며 살아오셨을까. 평생 가슴에만 묻어둔 그 이름, 아버지. 삼촌 삼촌이 불러보지 못한 그 긴 세월, 그 긴 기다림이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는 걸 우린 알암수다."
고 할머니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우리 삼촌 그 세월 견디며 살아오는 하영 속아수다.이제랑 당당히 불러보십서. 하늘에서 듣고 계실 아버지를 모심냥 불러보십서."
그 순간, 고계순 할머니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 나왔다.
“아버지… 저 아버지 보고 싶어요.”
“얼굴도 한 번 못 보고 돌아가셨는데도… 아버지를 찾으려고 돌아다니다가 귀도 다 어둡고…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진짜 우리 아버지 보고 싶어요.”
고 할머니는 끝내 오열했고, 장내 곳곳에서 흐느낌이 이어졌다.
눈물바다가 된 추념식장에는 재일 제주인 량성희의 소해금 연주에 맞춰 바리톤 고성현이 가곡 ‘얼굴’이 흘렀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품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이 노래는, 끝내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을 향한 그리움처럼 장내에 오래도록 맴돌았다. <헤드라인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