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문철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
그동안 미흡하나마 제주지역사회의 아픔을 함께하고자 했던 필자가 제주4·3평화재단의 이사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기도 하지만 천주교 신부로서 은퇴한 후에 제주4·3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우리 재단은 제주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그리고 그 아픈 역사를 평화와 인권의 가치로 계승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 속에서 탄생한 기관이다. 2000년 '제주4·3특별법' 제정을 바탕으로 설립된 재단은 침묵 속에 묻혀 있던 4·3의 진실을 밝히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 위에서 오늘에 이르렀다.
제주4·3은 한국 현대사의 깊은 상처 가운데 하나다.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이유도 모른 채 희생됐고 그 아픔은 오랜 세월 말할 수 없는 침묵 속에 남겨져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비극을 통해 국가폭력과 인권의 문제를 성찰하게 됐고 인간의 존엄과 평화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 오늘날 4·3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일깨우는 역사적 경험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오늘의 변화는 오랜 세월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유족들과 제주도민, 그리고 4·3 관련 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연구자들의 헌신 위에서 이뤄진 것이다. 수많은 분들이 자신의 목숨을 걸고 침묵을 깨뜨려 진실을 이야기했고 그 목소리는 함성이 돼 이제 과거사 해결에 있어서 세계의 모범으로 우뚝 서게 됐다. 저 역시 그 여정에 함께 해 온 것을 제 인생에 가장 보람있는 일로 기억한다.
특히 지난해 4월 제주4·3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이는 제주4·3의 역사가 제주와 한국을 넘어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역사적 경험임을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이 기록유산은 앞으로도 4·3의 역사와 교훈을 세계와 나누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제주4·3의 진상규명은 아직 끝난 일이 아니다. 우리 재단은 2003년 발간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이후 밝혀진 사실들을 더욱 충실히 기록하고 정리해 4·3의 역사가 보다 온전하게 정리될 수 있도록 마무리해 나가겠다.
제주4·3평화재단은 특정 기관의 것이 아니라 유족과 제주도민, 그리고 4·3의 해결을 위해 마음을 모아온 모든 분들의 공동 자산이다. 무엇보다 재단은 오랜 세월 깊은 아픔을 안고 살아온 유족들과 함께 걸어가야 할 기관이다. 재단은 유족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그분들의 기억과 아픔을 존중하며 앞으로의 길을 함께 만들어가겠다.
4·3의 역사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가운데 하나는 화해와 상생의 가치다. 아픈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리고 그 기억 위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나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일은 우리 사회가 반드시 걸어가야 할 길이다. 재단은 이런 가치가 제주사회 속에서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또한 4·3의 역사적 경험과 교훈을 세계와 나누며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는 일에도 노력하겠다.
필자는 천주교 사제로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제주4·3의 역사는 우리에게 인간의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그리고 정의와 평화를 향한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깊이 일깨워 준다. 이런 마음으로 이사장의 역할을 수행하며 4·3의 진실과 기억이 우리 사회에 더 깊은 정의와 평화의 연대를 가져올 수 있도록 힘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