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가장 일몰이 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알뜨르 비행장은 실로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 없는 너른 평원이었다. 도심의 생활 반경에선 누리기 어려운 대자연의 공기와 석양을 만끽하며 주변을 걷다가, 전혀 예상치 못한 묘비의 존재를 발견한 역설적인 순간을 그래서 더 잊지 못한다. 그토록 평화로운 자연이 깃든 곳에 ‘백조일손지묘’ (百祖一孫之墓)라는 생에 처음 본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백 명의 조상에게서 온 자손들을 한 곳에 묻었다’고 했다.
6·25 발발 뒤 두 달째인 1950년 8월, 사상적 불순분자를 예비검속(구금)하겠다는 명분으로 군인과 경찰이 제주 서쪽 마을 사람 백여 명을 잡아 가둔 뒤 총살했다. 비행장으로 썼을 만큼 너른 벌판을 고른 건, 도망치는 이들을 단번에 제압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이 학살로 가족을 잃은 이들은 공권력의 핍박 속에 무려 6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기 피붙이의 시체를 찾아나설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얽히고설킨 채 삭아버린 유골들을 도저히 분별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한 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각자 다른 뿌리에서 태어났음에도 죽은 뒤에는 그 식구들조차 알아볼 수 없게 돼 그저 한 집안의 자손인 것처럼 함께 묻을 수밖에 없었단 얘기다. 엄마를, 자식을 그런 식으로 떠나보내야 했던 끓는 비통함을 감히 어떤 수식으로도 표현할 길이 없어 그저 ‘백조일손지묘’라는 기록으로 적어 후대에 남겼을 이들의 심정을 떠올렸을 때, 권력 앞에 무력한 개인으로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 감각을 쉽게 잊지 못한다.
예술은 때로 그런 두려움을 세상 바깥으로 끄집어내고, 상처입은 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나눌 시대적 연대자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최초의 시도는 대개 감춰져있던 사건의 전말을 드러내고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에서 시작된다. 4·3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것조차 어려웠던 시대 분위기를 뚫고 나온 조성봉 감독의 ‘레드 헌트’(1997)가 대표적이다. 창작자의 고유한 이해와 정서 안에서 비극이 소화될 만한 시간이 흘렀을 즈음 임흥순 감독의 ‘비념’(2013)처럼 실제 피해자를 섭외해 개성적인 연출을 덧댄 실험영화가 등장했다. 한국영화 최초로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지슬’(2013)도 비슷한 시점에 완성됐다. 영문도 모른 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일단 동굴로 대피한 제주 사람들이 감자(지슬)를 먹으며 수더분하게 시간을 흘려 보내는 ‘지슬’ 속 장면이 제주의 향토 이미지, 음악과 맞물려 미학적인 예술영화로 빚어졌고, 관객은 절절하게 승화한 시대의 아픔에 기꺼이 젖어들었다.
관련기사
이런 비극이 상업 극영화로 연출될 때에 이르면, 그건 그 이야기가 좀 더 많은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갖춰졌다는 걸 의미할 것이다. 이달 15일 정지영 감독이 4·3을 다룬 최초의 상업 장편영화 ‘내 이름은’을 개봉한 배경이다. 9살 시절 4·3을 겪은 주인공 ‘정순’(염혜란)은 너무 큰 충격으로 일부 기억을 잃은 채 정신 질병에 시달리고,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는 그의 늦둥이 아들 ‘영옥’(신우빈)은 ‘무리지은 세력’이 주도하는 교실 내 부당한 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된다. 이 작품은 4·3의 비극을 극적으로 구현하는 걸 넘어 당시의 국가 폭력이 유사한 형태로 후세대에 세습되고 있다는 구조적인 문제의식까지 짚어낸다.
작품의 만듦새가 전적으로 만족스럽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사건을 직접 묘사하는 오래된 연출방식은 세련되기 어렵고, 제주를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자본의 논리를 4·3시절의 폭력적인 계보와 등치시켜 은유한 시선도 일면 동의하기 어려운 데가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우리 역사를 비교적 온전히 배우고 성장한 세대에게도 낯설었던 ‘백조일손지묘’의 비극을 보편적인 장르로 해석해 대중 앞에 내어놓았다는 점은 분명히 인정할 만하다. 통상적인 투자를 받기 어려워 예비관객의 십시일반으로 이루어진 크라우드펀딩으로 4억여 원을 모아 완성한 결실이다. 4·3으로부터 70년 넘게 떨어진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관객이 당시 고통을 짐작할 계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시대적 연대자를 찾아내는’ 예술의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